말과 믿음


"여기 청소 해야 되니까, 나가 주세요"
그녀는 불쾌한 듯 소리치며, 중얼거린다.
"언제 들어 왔담. . "
"네, 나갈게요."
나는 컴퓨터를 끄고, 가져 갈 책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한다. 
아주머니는 문간에 서서 금방 다시 소리를 지른다. 
"왜 빨리 안 나와요!" 
하던 동작을 멈추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가방 챙기고, 방정리 하고 있어요. 곧 나가요!!"
어느새 나도 짜증스럽게 그녀에게 댓구 하고 있었다. 

몇달전 [공주와 고블린]이라는 동화책을 번역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공주는 어린 아이였지만, 공주다운 위엄과 품위가 있었다. 
공주가 다락방을 헤매던 끝에 신비로운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할머니가 공주에게 "공주야 무서워하지 말고 이리오렴" 하고 말하자,
공주는 아무런 두려움없이 "네" 하며 그 할머니에게 걸어간다. 
작가는 이런 공주의 성품이 공주다운 것이라며, 친절하게 교훈을 일러준다. 

이 책을 읽은 뒤로, 
나는 일상에 묻혀 있던 이런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동화 속의 할머니처럼 "두려워 말고 이리오렴" 했을때 
일상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듯 
저 멀리 도망가거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도, 진지하게 생각지도, 또 믿지도 않는다. 
도서관의 청소 아주머니처럼 . . .

그 아주머니는 내가 나간다고 하고서는 몰래 숨어있을 작정을 하기라도 한 듯 
재차 소리치고, 재촉한다. 나가라고. . .
"네, 나갈게요" 라고 한 내 말은 거짓말이란 말인가!! 

공원에서 아이와 놀고 있던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친다. 
"아휴~ 그 막대기 어서 내려놔! 어서 내려놔! 내려놔. 내려놓라니까!" 
아이 엄마는 같은 말을 몇차례나 되풀이 하며 소리친다. 
아이를 믿지 않는 거다. 
아이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불신으로. . . 
 

by seabird | 2007/08/11 19:17 | impressions | 트랙백 | 덧글(0)

유혹과 죽음


유리잔에 담긴 짙은 커피 색이
더욱 유혹적이다.
악마의 음료. . .
커피를 이런 이름으로 부름직하다.
유혹. . . 혼이 빼앗길만큼 황홀한 무엇 . . .

삶은 진정 유혹인 것 같다. 
살아 보지 않은 생에 대한 강한 매력, 호기심. . .
그렇다면, 죽음은? 
삶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느낄 수 없는 상태. . .
그것이 죽음이 아닐까?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걸어서
보헤미안 (학교 앞에 있는 유명한 진짜 커피전문점, "커프"의 홍사장보다 뛰어난 커피 "바리스타" 사장이 운영한다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커피, 영화 속의 죽음과 같은 유치한 낭만을 비웃듯
생생한 죽음을 알려왔다.

최선생님의 아버님의 상고(故)였다. 
최선생님이 병상에 계신 아버님의 쇠잔한 모습에 마음 아파하신지 몇 주 뒤의 일이었다.
자식된 도리를 못했다고 안타까와 하실 최선생님의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또 "아버지께서 사실 의욕이 없으신거 같았어요" 하시던 최선생님의 말에 
다시 마음이 아려온다. 

작고하신 분은 생에 대한 아무런 유혹도 느끼지 못하셨던 게다. 
그래서 더욱 그분의 죽음이 애닯다. 
하물며 커피의 향과 맛에도 유혹을 느끼는 
여린 인간인데,
그분은 생이라는 커다란 매혹을 앞에 두고서도 
아무런 매력을 못느끼실 정도로 
절망적이셨나 보다. 
인간의 삶과 생명에 대한 절망 !! 

죽음 앞에서 생에 대한 유혹은 얼마나 거대할까?
그럼에도 그 유혹을 거부하는 생명의 힘 또한 더욱 숭고하다. 
그래서 "죽음"도 또한 생명의 선택인 것이다. 
그분의 생명의 선택을 숙연하게 애도한다.
   
by seabird | 2007/08/09 22:02 | impression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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